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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_작가共방/김영숙|루브르 박물관

유럽의 미술관을 가려는 당신에게

 

 

 

 

 


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이 루브르나 오르세, 혹은 내셔널 갤러리나 프라도 미술관을 들르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 의아하다. 하지만 사정이 허락해 몇 달씩 한 도시에 머문다면 모를까, 하루 혹은 반나절 코스로 그 도시의 필수 코스라는 미술관을 택한 사람들은 대부분 미술관 입구에 선 긴 줄을 보고 벌써 조급증을 느낀다. 루브르나 프라도는 말할 것도 없고, 비교적 작은 규모여서 보기 좋다는 오르세조차도 막상 소장품을 다 보려면 꽤 힘에 부친다. ‘꼭 가야 할 유럽 미술관 리스트’는 우리나라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가는 곳마다 전 세계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프랑스의 대문호 스탕달은 피렌체를 여행하던 중 산타 크로체 성당에 들어갔다가 그곳의 위대한 예술 작품에 감동한 나머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현기증을 느꼈다고 한다. 후에 이러한 증상은 ‘스탕달 신드롬’이라 명명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술 작품 앞에서 현기증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대체 뭐가 좋은 건지, 왜 자신은 그걸 못 느끼는 건지에 대한 자괴감 역시 자주 느낄 것이다. 때로 스탕달 신드롬을 배고픔이나 갈증의 신호와 구분하지도 못한 채 미술관 밖으로 빠져나오면 그제야 일단 보기는 했다는 안도감이 들지만, 단지 눈도장만 찍자고 그 아까운 시간과 돈을 들였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판단력과 결단력 그리고 실천의지라는 미덕을 제법 갖춘 ‘합리적인 여행자’들은 각각의 미술관이 자랑하는 몇몇 작품만을 목표로 삼고 돌진하기 일쑤다. 루브르에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오르세에서는 밀레의 <만종>과 고흐의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프라도에서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나 고야의 <옷 입은 마하> <벌거벗은 마하>를, 내셔널 갤러리에서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를, 바티칸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를……. 목표로 삼은 작품을 향해 한껏 달리다 우연히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본 듯한 작품들을 만나기도 하고, 때론 예기치 못하게 시선을 확 낚아채 발길을 멈추게 하는 작품들도 만나게 되지만, 대부분은 남은 일정 때문에 기약 없는 ‘미련’만 남긴 채 작별하곤 한다.

 

이런 식의 관람이라면 차라리 그 시간에 파리지앵처럼 센 강변에 앉아 좀 쉰다든지, 트라팔가 광장에서 런더너처럼 홍차를 마시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다. 세계 유명 도시의 ‘꼭 가야 할 미술관’에 가서 뭔가 대단한 걸 보긴 했지만, 인파에 섞여 찍은 어색한 웃음의 기념사진 이외엔 그 무엇도 기억할 수 없는 미술관 여행은 아쉬움만 남긴다.

 

이 책은 모르고 가면 십중팔구 아쉬움으로 남을 유럽 미술관 여행을 조금이라도 피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혹은 거의 망망대해 수준의 미술관에서 시각적 충격으로 ‘얼음 기둥’이 될 이들에게 일종의 ‘백신’ 역할을 하기 위해 준비되었다. 따라서 알찬 유럽 여행을 꿈꾸는 자들이 신발끈 단단히 동여매는 심정으로 이 책을 집어 들길 바란다. 아울러 미술관에서 수많은 인파에 밀려 우왕좌왕하다가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느껴야 했는지, 무엇을 놓쳤는지에 대한 생각의 타래를 여행 직후 짐과 함께 푸는 이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아마도 독자들은 깊은 애정을 가질 시간도 없이 눈도장만 찍고 지나쳤던 작품이 어마어마한 스토리를 담고 있는 명화였음을 발견하는 매혹의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림은 화가가 당신에게 전하는 이야기이다. 색과 선으로 이루어 낸 형태 몇 조각만으로 자신의 우주를 펼쳐 보이는 그들의 대담한 언어는 가끔 통역과 해석을 필요로 한다. 굳이 미술관을 가지 않더라도 글보다 쉬울 줄 알았던 그림 독해의 어려움에 귀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는 경험을 한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영숙 고려대학교에서 에스파냐어를 공부했고, 졸업한 후 주한 칠레 대사관과 주한 볼리비아 대사관에서 일했다. 대학 시절에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할 만큼 클래식과 재즈 음악에 푹 빠졌고, 마흔 살 즈음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가 미술사를 공부했다. 글을 읽을 줄 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미술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루브르와 오르세 명화 산책》 《피렌체 예술 산책》 《현대 미술가들의 발칙한 저항》 《그림 수다》 《그림 속 예수를 만나다》 《파리 블루》 《자연을 사랑한 화가들》(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엘 그레코》가 있다. 어린이를 위해 지은 책으로 《그림으로 읽는 어린이 세계사》 《미술관에서 읽는 그리스 신화》 《미술관에 가고 싶어지는 미술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