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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訃告> 인문학 저술가 남경태 선생님께서 별세하셨습니다.




 



1. 과거와 현재, 역사와 철학을 상상력으로 종횡무진하다

- 종횡무진 인문학자 남경태의 삶과 책

 

대표적인 인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저술가로서 수많은 역사책과 철학책을 번역하고 썼는데, 정작 대학에서의 전공은 사회학이었다. 1980년대에 편집자로 출판계에 입문한 뒤 이후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현재 인문 분야 최고의 번역자로 자리 잡았다. 번역 뿐 아니라 여러 학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저술은 국내 대중교양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종횡무진 인문학자, 우리 시대 최고의 르네상스맨이라는 별칭에서 보여주듯 그가 전하는 지식의 세계는 넓고 풍요로웠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었기에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서 책 한 권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될 때까지 그는 숱한 자료를 찾아 읽고 또 읽었다. 반복되는 독서와 원고 탈고까지 인고의 시간이 지겨울 법도 하건만 그는 오히려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쓴 부분에 대해 누가 틀렸다고 지적하면 , 그렇구나하고 반성하면 된다. 나는 공부하는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자유롭다. 상상력에서 자유롭고, 25년간 으로 살았다. (……) 15년 전 종횡무진 서양사를 쓸 때다. 그리스, 로마사는 알고 있었고 근대도 공부했지만 서양의 5~10세기는 몰랐다. 그런데 중세에 관한 책을 쓰게 되면서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다. 책을 써야 하는 절박함이 책을 농밀하게 읽게 했다. 주식 투자를 처음 할 때 관련 책을 2~3권 사서 보고 하는데, 나는 주식 투자에 관한 책을 써보라고 한다. 나는 역사를 교통정리하는 책은 싫다. 저자의 호흡이 살아 있는 책, 남경태만이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면 공해라고 생각한다.

헤럴드경제, 2014. 1. 11.

 

아카데미즘이라는 고탑에 갇히지 않고 자유로웠던 그의 공부는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이라는 날개를 띄워 인문학이라는 광활한 대지를 활강할 수 있게 했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사이에서 굳이 한쪽을 택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역사와 철학을 종횡무진한 그의 책들은 인문 독자들에게 경계 간의 울타리를 허물고 인문학이라는 숲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그의 저작 중 종횡무진 역사는 동양사와 서양사, 역사와 시사가 한데 버무려진 독특한 시각으로 수년째 역사 분야 최고의 스테디셀러 자리를 지키며 남경태만의 지식 세계를 거침없이 보여준다.

 

 

2.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삶을 위하여

- 수다쟁이 인문학자, 세상과 만나다

 

특유의 소박하고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주변의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켜 버리는 그는 알아주는 수다쟁이였다. 역사, 철학, 시사는 물론이고 과학과 예술까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 만나기만 하면 수다로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진리의 상아탑에서 지식을 전유하기보다는 공부한 것을 주변과 나누고 세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망이 강한 그였다. ‘주어진 사실에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입힐 것인가라는 질문은 그의 작가 인생을 관통한 평생의 주제였다. 자신만의 시선과 호흡을 갖기 위한 부단한 노력은 결국 인문학이라는 구름판을 통해 누구나 생각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일기를 제외한 모든 글은 보여주기 위한 소통의 글이기 때문에 잘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며 쉬운 글쓰기를 지향하고 인문학의 문턱을 낮추었다. 그의 저작 중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누구나 한 번쯤 철학을 생각한다》《개념어 사전등 쉬운 문체와 더불어 기획력이 돋보이는 기초 교양서가 대표적이다.

이 열정적인 인문학자는 종이 매체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미디어와 여러 활동을 통해 세상과 만났다.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인문 독자부터 기업의 최고경영자, 청소년까지 그를 찾는 곳은 다양했는데, 각자의 처지에 맞춰 이들에게 어떤 인문학 공부가 필요한가 하는 맞춤형 강의는 늘 뜨거운 공감을 이끌어냈다. 2007년부터 2014년 입원 직전까지 진행해온 MBC 라디오 타박타박 세계사7년간 방송되며 청취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았고, 2013MBC 연예대상에서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3년부터 1년간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진행자로 활약했는데, 함께한 역사학자 신병주(건국대 사학과) 교수는 이 시대가 낳은 역사의 달인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풍부한 지식과 예리한 비교 사관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입체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역사를 전달한다며 그를 추켜세웠다. 그는 학자에서 일반 독자까지 많은 사람들에게서 사랑받는 수다쟁이 인문학자였다.

 

 

3. 벌써부터 그의 말과 글이 그립다

- 쉼 없이 달려온 대표 인문 주자를 필드 밖으로 떠나보내며

 

그는 종종 스스로를 야매학자라 불렀다. 그래서 이른바 근본이 없는그의 글쓰기는 오히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당당하며 자유로웠다. 자신의 호흡이 살아 있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책을 고집했던 그다. 폭넓은 지식과 통찰력, 사고력을 가지고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한곳에 고이지 않고 현재에 쓰임이 있는 글을 쓰겠다는 작가로서의 지향은 분명했다.

 

지금까지 인문학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고 더 많은 책을 번역했다. 그러나 이 종횡무진 시리즈만큼 애정과 관심을 쏟고 정성을 기울인 책은 없었다. …… 전 세계를 통틀어도 동양사, 서양사, 한국사를 한 사람의 저자가 책으로 엮어낸 사례는 없는 듯하다(무엇보다 한국사가 포함되어 있으니 외국인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리즈는 그런 형식적인 특징에 만족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이 시리즈에서 한 사람의 저자가 가진 일관된 사관과 역사 서술을 읽어내고 그것을 중심으로 공감이나 비판의 시선을 던져주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한 사람의 저자가 시리즈를 완성한 보람이 있을 것이다. …… 지은이의 향기가 나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고, 좋은 텍스트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지은이의 향기가 진하다. 앞으로도 독자들이 이 종횡무진 시리즈에서 지은이의 체취를 느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야말로 지은이의 체취가 가득한, 작품을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 같은 그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종횡무진 한국사》《종횡무진 서양사》《종횡무진 동양사(20152월 완결개정판 출간 예정) 시리즈의 머리말이다. 128, 그가 마지막으로 쓴 글이기도 하다. 할 말과 쓸 말이 너무나 많았던 그는 20여 년의 작가 생활 동안 3저작 39권과 번역서 106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134145, 어지간히 성실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범접할 수 없는 다작이다. 마지막까지도 병상에서 지리와 역사, 천문학을 아우르는 지구본 갖고 놀기라는 원고를 놓지 않았을 정도로 평생에 걸쳐 글쓰기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그였지만, 종횡무진하던 필드 위에서 병마에 의해 강제로 내려와야 했다. 아직 우리는 그에게서 듣지 못한 말이 너무 많다. 앞으로는 어떤 글을 쓸 생각이었는지도 몹시 궁금하다. 벌써부터 그의 말과 글이 그립다.

 

  

이력

1961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1980년대 사회과학 출판사 백산서당 편집장, 도서출판 새길 기획위원

1994년 첫 저서 셜록 홈즈의 추리학출간

2007~2014MBC 라디오 타박타박 세계사진행

2013MBC 연예대상 공로상 수상

2013~2014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진행